구산 성지
순교 역사 구산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 마을로
둘러싼 뒷산이 거북이의 모습을 닯았다는 데서 이름
붙어진 구산 은 김성우[안토니오]성인과 8 분의 순교자를
탄생시킨 거룩한 성지이며 유서 깊은 사적지입니다
성 김성우 안토니오 나는 천주교인이요 [1795
ㅡ1841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
교인으로 죽고자 할 따름이다 구사에서 탄생
1830년 영세 36세 1839년 한양 포도청에 체포
교수형으로 순교 47세 :死生間 天主敎人
복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도다.
[은총문] 은총가득한 구산성지 정문]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기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편 ㅡ3절]

선물방
구산성지를 순례하시는 분들에게성물을 통해
더욱 많은 하나님 은총이 함께 하시길,,,,,,,,,

초 봉헌실
성모님 !저는 기도할줄 모릅니다.
저의 마음을 이초에 담아 바칩니다.
저와 가족을 위해 기도 해 주십시요


















◈ 구산성지:
마을을 둘러싼 뒷산이 거북이 형상을 닮았다는 구산성지는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을 비롯해 박해 시대에 많은 치명자가 탄생한 사적지이다. 양반가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것이 없었던 김성우 성인이 신앙에 입문한 것은 1830년경으로 알려져 있다. 두 동생 만집, 문집과 함께 유방제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고 한동안 유 신부를 모시고 회장직을 수행하며 친척과 이웃들을 입교시켜 이 지역을 교우촌으로 만들었고, 1836년에는 모방 나 신부가 입국하자 자기 집에 모시고 우리말과 조선의 풍습을 가르치기도 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됐다가 간신히 풀려났던 성인은 1849년 다시 가족들과 함께 붙잡혀 갖은 고문을 당하여 이듬해 47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그의 유해는 후손들에 의해 이곳 구산성지에 모셔졌는데 이곳은 성인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오며 묘소를 본존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박해시대의 자취가 가장 원형대로 남아 있는 곳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전통적인 신앙공동체의 모습을 200여 년간 간직하고 있는 귀중한 교회이자 순교의 얼이 살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출처] [수원교구] 박해시대의 자취가 원형대로 남아있는 곳 – 구산성지|작성자 디모테오
예 수 성 심
지극한 사랑으로 두팔을 활짝벌려 반겨주시는
예수성심상 우리의 도움이신 성모 마리아
가정과 인류의평화를 전구하는 구산 성지에서만
볼 수 있는 유일한 성모상













